교장 선생님에 이어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 보내준 사람은 C라는 키르기즈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교육에 관한 한 경험이 풍부했습니다. 한편으로 매우 냉철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친구여서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교장 선생님 D는 당시 현직 칼리지[1] 학장인 친구 C를 만나보겠느냐는 제의를 했습니다. 당시 나는 영어학원을 도약대에 올리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당장 “예스”했습니다. 비쉬켁 시내 센터 2층에서 우리는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처음 만나면서 나는 학교이야기는 뒤로 미루면서 키르기즈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습니다. D의 성질이 급한 탓인지 D는 참지 못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이끌었습니다. 우리는 대학 세우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D는 자신이 아는 사람이 한국에서 왔고 내가 대학을 세우고 싶어한다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러나 현직 학장인 C는 물끄러미 나를 다시 쳐다보았습니다. 아마도 그럴만한 사람인지 속으로 따져보듯이 말입니다. 그러고는 “대학을 설립하려면 그만큼 재원이 뒤따라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대학을 시작하겠다는 사람이 그만큼 재원을 갖고 시작하는 것인지를 보려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녀의 호기심을 꺼지지 않게 바로 말을 이었습니다.
“대학은 한 국가의 정책사업이고 미래의 중요한 기간산업인데 키르기즈스탄이 대학설립을 허가하는 일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요?. 대학을 승인받는다면 사실 재원은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을겁니다” 나는 그녀의 호기심을 꺽지않도록 당당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쯤하고 우리는 화제를 바로 바꾸었습니다. 서로가 대학을 바로 설립할 아무런 계획이나 재원이 없는 상태에서 괜스레 공허한 이야기만 나눌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키르기즈스탄의 언어에 대해, 그리고 C와 D가 가까운 친구 관계라는 점, 그리고 내가 이전에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이날 서로의 신뢰감을 확인하는데 2시간 이상을 보내야 했습니다.
어느 날 C가 D를 통해 연락이 왔습니다. D와 함께 자기 학교로 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만나기로 한 날 나는 학장실로 바로 찾아갔습니다. 비서실을 통해 그녀를 만났습니다. 학장실 안의 테이블에는 서류로 꽉 차 있었는데, 그 서류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대학교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서류들이 다 망라돼 있었습니다.
“제가 시간이 좀 없습니다. 대학 설립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서류들은 대개 여기에 다 올려놓았습니다. 한번 보시고 궁금한 것은 질문을 하지죠…”
모두 러시아어로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러시아권 교육을 좀 받았던 터라 서류가 생소하지 않았습니다. 서류는 교수들의 월급 상황, 대학교의 법인세 등 세금 상황,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 장학금의 종류, 관리비 등이 모두 보였습니다. 말하자면 평소 내가 대학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해오면서 “어디서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알아볼 수 있을 까”하는 서류들이 모두 이렇게 내 눈 앞에 놓여있지 않은가!
이전에 나는 소개를 받아 키르기즈스탄 교육부 차관을 만난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그 차관도 대학을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을 뿐 실제 대학을 설립하기 위한 서류의 한 개도 가르쳐 준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해당 차관은 대학교 설립을 책임지는 차관이었습니다. 키르기즈스탄이 가난하게 살아도 한가지 좋은 제도는 있었다. 그것은 국무위원(장관들)이 바뀌어도 선임차관은 항상 임기를 보장받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야 어떤 정책이건 연속성을 가져가야 하는 대목에서는 그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대학교 승인권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도 대학설립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나는 C라는 분이 정말 이렇게까지 ‘업무상 비밀’을 모두 가르쳐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현직 대학장으로부터 대학설립을 위한 준비, 설립과정에서 필요한 서류, 설립까지의 제 비용, 대학운영비용 등을 한 자리에서 모두 알아낸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습니다. 별도의 비용은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1] 미국에서의 College와 러시아에서의 College는 다르다. 미국에서 칼리지는 보통 4년제의 단과대학이거나 학점제 대학은 커뮤니티 칼리지는 뜻한다. 하지만 러시아에서의 College는 3년제로 우리의 고등학교과 대학2년사이에 있는 전문대학이다. 특히 학생들의 특기(음악, 제육, 그타 특성과 과목)에 따라 일찍 사회진출을 위해 기획된 전문성 대학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전문대학과는 좀 다르다. 러시아권 대학에서는 College를 졸업하면 대학교 2년 혹은 3년생으로 편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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