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정의로 승리하는 키르기즈국제대학교
수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벌써 전국적인 뉴스가 되었기 때문에 각 영역의 수사담당자들은 기민하게 움직였습니다. 우리 대학의 문제는 외국인이 주인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총장인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총장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교도가 많은 국가에서는 항상 문제의 소지로 등장합니다. 특히 학생들이 종교적 압력을 받았다고 신고한 사안이어서 정부 부처는 물론 모든 수사기관이 총동원되었습니다.
대통령 종교국, 교육부 대학국, 비밀경찰국 수사는 경찰청, 비쉬켁경찰청, 츄이주 경찰청, 츄이주 검찰청, 관할 경찰서, 지역 교육청. 우리나라 처럼 일선 수사기관이 조사를 하면 수직적으로 위로 올라가는 시스템이 아니고 여러 기관에서 평행적으로 부르고 조사를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수사에 대응하는 것이 복잡하고 시간도 걸리고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하나하나 정면으로 당당히 응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수사 대응을 총괄 지휘하는 하나님의 정의는 최상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의 고난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확신 속에 나는 수사에 당당하게 임했고 직원들에게도 -우리가 특별히 법을 어긴 사실이 없으니- 그런 태도로 당당히 임하라고 말했습니다.
수사대응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선, 지인을 통해 유력한 변호사 한 분을 소개받아 선임했습니다. 신뢰가 크게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척박한 키르기즈스탄에서 나름대로 유명세를 타고 있어서 믿고 맡기기로 했습니다. 오래전 변호사그룹을 만들어 민사와 형사소송에서 눈에 띄는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도 받고 있었습니다. 공판에 비교적 잘 대응한다고 소문난 변호그룹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해당 변호사를 직접 만나 사건대응을 부탁하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변호비용을 어느 정도 감안하면 ‘적극 대응’해 줄 것이란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문제해결의 단초를 열어갈 줄만 알았던 변호사는 이상하게도 이번 사건에 소극적이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 사건에는 권력기관인 비밀경찰이 끼어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이 문제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부분이 있어 사건수임에 소극적이었고 또 난색을 표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오히려 이 변호그룹은 그동안 우리 한국인 교직원들이 신청했던 장기체류 비자와 영주권문제 수임을 포기하겠다며 접수서류와 수임비를 돌려주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이번 우리 대학 문제가 중대한’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나는 대표변호사와 계약서를 작성하고 수임비를 주었습니다. 일단 맡기고나서 앞으로의 문제를 풀어가자고 설득, 사건 수임 자체는 맡기게 되었습니다. 중앙아시아 변호그룹들의 양상은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한 탓인지 금방 계약을 하고도 그 계약을 어기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중앙아시아 대부분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어서 크게 실망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한 일은 한 일은 우호적인 언론사 기자들과 학부모들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우호적인 일부 통신사 기자들은 이미 전국적인 뉴스가 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관심도 많았고 한 기자는 우리 대학교의 입장에서 정확한 진상을 보도자료화 하라고 귀띔해주기도 했습니다. 대학의 홍보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총장인 나와 직원 한 사람이 밤을 세워 그 동안의 사건 전개 과정을 복기해 언론사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론사 역시 태도가 표변하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종교의 변화가 그 국가의 정체성에 엄청난 변화를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언론사 기자는 적지 않은 금액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기사를 실으려면 광고비를 내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꽤나 큰 금액을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저와의 관계가 변한 기자도 있었습니다. 공산주의 혹은 전체주의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에서의 언론이라 물론 나는 기대를 크게 하지는 지 않았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는 기자들과의 ‘특별한 관계를 생각해 우리 입장의 기사화를 요구했는데, ‘대가’가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대신 학부모들에게 눈길을 돌렸습니다 특히 그동안 대학설립에 대해 항상 감사하고 우호적이었던 학부들과의 모임이 있었는데, 우리들은 그들 학부모들에게 연락해 대학으로 와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학부모와의 ‘비상대책 모임’ 성격이었습니다. 대학의 상황과 관련, 대책을 논의해보고 필요하면 학부모 차원에서 도울 일이 있지 않을까해서 학부모 회의를 소집한 것입니다. 학부모들 10명중 7명은 이슬람교도였고, 1명은 기독교인, 나머지 두 분은 종교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학부모 대부분은 머나먼 미국 땅에서 개인사재를 털어 대학을 세운 미국인 설립자와 학교를 적극 옹호해주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은혜를 베푼 사람들에 대해 이슬람의 율법에도 반한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의 부모를 찾아 고소장을 취하하도록 설득해보겠다는 부모도 있었습니다. 어떤 학부모는 대학이 위치한 시장에게 연락, 시장을 앞세워 대학측을 옹호해주었습니다.
“시장님, 이 대학이 어떻게 설립되었는 지 알고 있지요? 미국인 의사 한 분이 중앙아시아 키르기즈스탄이 발전하려면 젊은이들의 교육이 중요하다며 사재를 털어 이 곳 시골에 대학교를 세웠습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뭔가 오해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교육부나 경찰을 찾아갈 것이 아니라 강의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저는 대학이 들어선 지역의 시장으로서 이 대학이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원합니다. 정상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사법기관에 대해서도 시장으로서 소명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학부모들은 대학의 종교차별과 관련한 고발사건에 대해 영상을 찍어 관련 당국에 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나는 교직원을 시켜 학생카페에서 학부모 한 사람 한 사람을 카메라 앞에 세웠습니다. 학부모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누구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라고 서슴 없이 밝히고 이번 종교파동이 이슬람의 지원을 받은 불순한 의도를 가진 학생들이 일으킨 사건같으니 오히려 이들 학생들을 찾아내 처벌하라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돈을 버는 누가 이런 시골에 자기돈을 들여 학교를 세웠습니까?
지난 몇 년동안 우리 대학에 한 자녀를 보내다 대학의 강의 수준, 대학의 비전이 좋아 3자녀 모두 우리 대학에 보낸 학부모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학부모는 "중앙아시아에서 최고의 대학으로 지원을 못할망정 이런 대학교를 수사 운운하는 것은 정말 잘못하는 것"이라면서 "지역 발전을 위해 이 대학을 살려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어떤 학부모는 대학 측은 잘못한 일이 전혀 없고 오로지 대학의 소속 학생들을 물심양면을 다해 지원하고 돕는 것이 모두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학부모도 있었습니다. 학부모 한 사람 당 3분 정도의 영상을 찍으려 했으나 7분이 지나도 할 말을 계속하며 학교측을 두둔하는 학부모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학부모 운영위원 회의 직후 일어났습니다. 이번 사건의 진상을 한 학부모로부터 '자백'받았습니다. 우리 대학의 첫 졸업생 중 한 사람이 한 학부모와 학생을 설득, 진상을 파악해 낸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문제제기한 학생중 한 학생이 음모를 꾸민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주동한 학생은 ‘강한 이슬람교도였습니다. 이들의 배경에 이슬람 세력이 있지 않고는 이번 문제가 벌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 한 수사관의 귀띔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내용의 학부모 회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은 자기들과 다른 학생들의 부모에게 거짓정보를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학부모들에게 “대학측이 강의시간에 성경읽기를 강요하였다" "일요일이면 교회 예배를 강제로 드리도록 강요한다"며 학교가 하지도 않은 흑색선전을 퍼뜨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문제를 주동한 학생은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크리스찬학생들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거짓정보를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보세요. 저는 OO대학 OO학과 누구입니다. OO와는 친구인데요. 그 아이가 대학교에서 성경읽기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OO교회에 강제로 데리고 가서 예배를 보았는데 이런 일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문제학생들은 다른 학부모들에게 랜덤으로 전화를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있지도 않은 일을 대학과 한국인 교수들에게 문제가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키르기즈스탄 시골에서 갑자기 그런 식의 전화를 받은 학부모들이 다음 날 대학을 항의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농기구등을 동원해 들이닥쳤습니다. "항의하러 가겠다”면서 대학으로 찾아오겠다는 전화도 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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