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가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것은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다. 그 것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내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결정자 즉 행위자이긴 하다. 하지만 내 감성과 이성과 오감을 총 동원해 스스로의 힘으로 내가 내린 결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내려놓고도 내가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 것은 보이지 않는 어떤 영적인 힘에 이끌려 수동적으로 내려진 결정이라는 것이다. 그 경정은 내가 내리면서도 내가 내리지 않는 것이며, 어떤 영적 힘과 권위에 순종하며 그 방향으로 내려진 결정이라는 것이다. 대개 영적 힘이나 권위에 이끌려 내려지는 결정은 매우 평안함 속에 진행된다. 나는 살면서 기도할 때마다 혹은 어려운 고비마다 그 결정을 하나님에게 의뢰한다. 습관처럼 되어 있다. 내가 단순히 수동적으로 내 결정을 미루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의뢰하는 결정이다.
나에게 있어서 어떤 영적인 힘에 이끌려 내린 결정은 성경공부를 하겠다는 결정이었다. 성경을 좀 더 깊이 알기 위해 성경공부를 하겠다는 결정이었다. 나는 은퇴하기 까지 기자나 대통령 비서실 업무부터 주로 긴장된 연속에서 일을 해왔다. 지난 수십면간 항상 마음 속에 염원하는 것이 있었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통하고 싶다는 간절함이라고 할까.
로스앤젤레스 행 여객기 안에서 내려진 이 결정은 곧 실행에 옮겨졌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아내가 함께 일하고 있는 친구부부 집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일요일만 돌아오길 기다렸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도착한 지 겨우 2,3일 밤을 지냈는데 성경을 깊게 공부하고 싶다는 간절함때문인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듯 했다. 10년만에 다시 찾은 옛 출석교회를 향해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지인들도 인사할 겸 또 2부 예배시간 시작 전 교회 행정국에 성경공부를 신청하기 위해 서였다.
로스앤젤레스의 날씨는 언제나 청명했다. 달리는 차 창문 너머 들어오는 무색무취의 바람도 부드럽게 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상큼하고 좋았다. 늘 다니던 2번 프리웨이도 차량 바퀴와의 희안한 마찰음으로 나를 반겼다. 프리웨이 옆길 수제 햄버거 집도 여전했다. 자녀들, 친구들과 50여미터 늘어선 모습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출석해 온 교회 예배당 모습과 교회 분위기가 어떻게 변모해있을 지도 궁금했다. 10년 전 교회에서 보냈던 일들이 모릿 속에 그려졌다. 담임목사님의 말씀도 신선했지만 예배당의 현대식 건축구조도 또렷이 떠올려졌다. 한국의 옛날 교회당 모습과 사뭇 달랐던 본관 예배당. 어렸을 때 친숙해있던 교실식 배열이 아니라 가로로 훤히 트인 현대식 컨서트장도 그대로 있을까. 무대와 객석이 가깝게 느껴져서 지금도 하나님과 나 사이의 거리가 그만큼 가깝게 느껴질까. 아들이 스승과 함께 펼쳤던 찬양컨서트를 떠올리며 나는 달리는 차 속에서 그 곡조를 조용히 읊조렸다.
다른 장에서 자세히 나누겠지만 본 건축물이 완성되기 전 천막당사에서의 많은 은혜의 줄기도 잊을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잊기 어려운 것은 나이가 훨씬 지긋한 한 장로님의 아침교제였다. 당시 나는 새벽제단을 열심히 쌓고 있었는데, 그 장로님과 나는 새벽예배 후 거의 매일매일을 두 가지를 함께 했다. 하나는 예배 후 조깅 혹은 산책이다. 우리는 예배 후 항상 교회주변을 산책 또는 조깅을 했다. 다른 하나는 조깅 후 매일 함께 조찬을 하는 일이었다. 예배 후 새벽기도를 누가 먼저 끝내든 우리는 교회 주차장에서 상대가 끝나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가까운 조찬장소로 향해 샐러드를 곁들인 맛있는 아침을 함께 하곤 했다. 아침식사는 주로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프렌치 치즈, 각종 야채로 어우러진 샐러드와 빵, 커피였다. 조찬동안 나는 그 분이 살아 온 이야기를 듣는 게 무척 흥미로웠다. 그 장로님은 나와 만나 예배드리고 운동하고 식사하는 것, 그리고 내가 잘 아는 러시아에 대해 이야기 듣는 것을 참 좋아하셨다. 하루라도 우리 중 누가 새벽예배를 거르면 여지 없이 출근을 전후에 상대방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교회에 도착해 먼저 내가 찾은 곳은 교회 행정실이었다. 예배 시간이 1,2,3부로 계속 되고 있는 바쁜 시간대였기 때문에 행정실에는 사람들이 있다간 어디론가 곧 사라지곤 했다. 한 참을 기다리니 한 직원이 들어왔다. 나는 대뜸 성경공부를 신청하고 싶다고 했다. 성경공부도 여러가지가 있는데라며 어떤 공부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교회에 들어설 때 게시판에 붙여있던 일대일 양육자반 모집을 보았기에 무심코 일대일 양육을 받고 싶다고 했다. 좀 더 성경을 깊이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이미 발동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떤 성경공부 든 상관은 없었다. 일대일 양육이라면 좀 더 깊이 성경을 알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곧 양육자 훈련을 신청하고 바로 예배에 참석했다. 2주 안에 일대일 양육자를 연결하는 연락이 갈 거라는 담당자를 말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2주가 넘어도 교회로부터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당시 나는 하루빨리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에 내게 2주일은 내게 너무 가혹했다. 아마도 두 세 번은 행정실에 계속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전화할 때마다 연결해 줄 적절한 양육자 장로님을 찾고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맡아 줄 적절한 장로님을 교회가 찾고 계속 찾고계시다는 답변만 들려왔다.
한달쯤 지나자 한 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윤광열 장로님 아세요? 당신의 일대일 양육훈련 담당자는 윤광열 장로님께서 맡아주시기로 했어요. 지금 그 분은 선교 여행 중이신데 10일 후에 돌아오시면 전화가 갈 겁니다" 매우 반가운 답변이었다. 윤광열 장로. 그 분을 나는 잘 모르지만 "선교열정이 있으시고 참 좋은 분"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이었다.
내가 윤 장로님과 제자양육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다시 한달 쯤 지나서였다. 그 분은 아프가니스탄 선교를 다녀오시자마자 나를 찾았다. 우리는 그렇게 제자양육 훈련을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나에 대한 계획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계획이 아니라 그 분의 계획이었고, 모든 결정은 내가 내린 것이 아니라 나를 인도하고 마음에 순종하도록 하신 하나님이 내린 결정이었다. 하나님은 나에 대해 이미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이제 그 밑그림 퍼즐을 맞추며 나를 하나하나 인도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내게 명령하고 내가 그것을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그 분이 내게 준 것은 마음 속에 평강이었다. 그 분만이 줄 수 있는 형언할 수 없는 평안함이었다. 로스앤젤레스행 여객기 안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내 주시는 동안 나는 말 할 수 없는 평안함 속에 휩싸였다. 그 평안함은 졸업 후 이제까지 긴장하며 살아 온 지금까지의 내 생애에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그런 평안함이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은퇴 후 계획짜기에 몰입해도 부족할진대 그런 평안함 속에 거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평안함이었다. 그 분만이 줄 수 있는 평안함말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압박감을 갖기는커녕 깊은 마음으로부터의 평안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그런 평안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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