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5일. 올 해로 개교 12년이 됩니다. 나는 용감하게 도전했습니다. 키르기즈스탄에서 대학비전을 안고 일을 시작한 지 두달 남짓 지났습니다. 교육부로부터 컴퓨터와 영어,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허가를 받자마자 나는 개교 기념식을 기획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용감하다 못해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우선 학생이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기교기념식을 갖는 것도 용감한 일이었지만, 그 기념식에 생면부지의 이른바 학원 주위의 유지들 모두에게 초청창을 보낸 것입니다.
기념식은 학원 부엌을 넓게 개조한 식당에서 갖기로 했습니다. 당시 직원이라고는 영어선생으로 뽑아 놓은 대학을 갓 졸업한 키르기즈인 페리잣과 베기마이, 그리고 부엌에서 일 하는 러시아인 리마가 전부였습니다. 원장인 나와 직원 3명이 1백명 가까이 손님들을 치르는 학원개원 기념식이었습니다.
우선 식순을 정하고 초청할 축사자를 정했습니다. 대학을 세우기 위해 우리보다 2년전에 와 있던 S총장님과 교수들, 또 나를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선교사선생님들도 초청했습니다. 무엇보다 세심히 배려한 것은 현지인들이었습니다. 장래 대학이 들어설 지역 쇼포코프의 시장, 부시장, 행정시보다 상위기관인 도지사[1]와 함께 교육부 외국교육기관 감독관도 초청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외국인들이 와서 교육기관인 학원을 처음으로 개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쇼포코프 동네에서 초청받지 않은 많은 학부모들도 왔습니다.
설립자께서 “풍성한 동네잔치처럼 합시다”고 제안을 하셔서 나는 2부순서의 식탁을 풍성하게 준비해야 했습니다. 당시는 코리아 한류 열풍이 불기 전이지만 고려인들 덕택으로 한국음식이 맛있게 진귀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나는 키르기즈스탄에 도착해 미리 알아 둔 한국음식점 ‘서울’에서 한국음식을 케이터링했습니다. 잡채와 갖가지 떡을 주문했고 특히 김치를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키르기즈 빵과 양고기 등 전통음식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D-데이가 되었습니다. 나는 순서와 축사를 점검하고 곧 오픈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나는 러시아에서 퇴직하고 얼마 되지 않아 기념식 정도는 러시아로 준비할 수 있었는데, 이는 러시아를 공용어로 쓴 키르기즈인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심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 SOSI 교육센터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저는 SOSI 센터 디렉터인 유민이라고 합니다.”러시아인의 발음과 가까와서 인지 “와”하면서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내빈을 먼저 소개했습니다. 키르기즈 쇼포코프 시장, 교육부 외국인교육기관감독관, 소쿨룩부지사, 학원설립자 로버트 윤………….그리고 우리 학원의 영어선생 페리잣, 베기마이를 끝으로 내빈소개를 마쳤습니다. 솔직히 학원은 강의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하나님은 나를 용감한 스파이더맨으로 만들어 등을 떼밀며 기념식을 강행하게 하였습니다.
이윽고 쇼포코프 시장, 소쿨룩 부지사의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슡레이만 겐자에비치는 우즈벡 출신으로 노회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가 러시아말로 하면 사회자인 내가 통역을 했습니다.
“……..멋진 한국에서 이렇게 훌륭한 교육시설을 세워주신 설립 로버트 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젊은 청소년들에게 휼륭한 지식과 인품으로 미래의 지식과 지혜를 가르치는 미스터 민에게도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일들은 키르기즈스탄 행정부조차 신경을 쓰지 않는 일인데 이렇게 훌륭한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가르치는 한국인과 미국인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학원은 시작도 안했는데, 하나님은 먼저 개교식을 통해 사람을 불러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참석한 사람들을 불러 이렇게 멋진 학원이 수도 비쉬켁 가까운 곳에 세워져 있음을 알게해주셨습니다.
기념식이 끝나고 식사자리였습니다. 쇼포코프 시장은 헤드테이블을 빠져나와 사회자인 내자리로 와서 넌지시 내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미스터 민~ 아까 기념식을 할 때 시장인 나보다도 저기 저 테이블에 있는 부지사가 나보다 먼저 소개시켜야 돼. 그 사람이 나보다 높은 사람이야~”
기념식과 축사에서 내가 서열을 무시하고 자기를 먼저 소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중앙아시아 이 곳에서도 정치는 돌아가고 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50여명의 손님들을 모시고 나는 학교 강의실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강의실은 15명 정도 들어가는 교실 20개가 전부였습니다. 강의실 책상과 의자는 옛소련 것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낡아 보였지만 매우 튼튼했습니다. 몇몇 교실에 설치된 교육용 컴퓨터와 모니터를 자랑했습니다. 교실 문은 전날 나와 전 직원들이 밤사이 페인트 칠을 해서 새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지나가면서 페인트 냄새가 우리들의 코를 찔렀습니다.
마지막으로 손님들을 이끌고 텃밭의 비닐하우스를 자랑스럽게(?)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비닐하우스의 모든 재료를 한국에서 공수해 만들었습니다. 겨율내내 이 비닐하우스에서는 각종 샐러드의 재료가 되는 야채가 자라날 것입니다. 우리는 재배한 야채로 우리 학원의 학생들에게 아주 신선한 음식재료를 공급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학교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을 부학장으로 영전시키다 (0) | 2023.1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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