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학장을 만났을 때 나는 “이런 분이 우리 대학을 시작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국립대학 안에 단과대학을 설립해 본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대학 재정의 설계사로서 자신이 운영중인 대학의 상황을 실무적인 일에서부터 능통해 있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 장에 기록한 것처럼 내가 키르기즈스탄에 온 것은 하나님의 프로젝트였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대학교수직을 해 본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대학을 설립해 본 경영자로서의 경험을 가진 나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나는 “이 낯선 땅에 내가 대학을 세우는 일이 가능할까”라며 자문하곤 했습니다. 주님은 그 때마다 내게 큰 힘을 주셨습니다. 기도를 통해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고 계속 말씀해주셨습니다. 나는 그때 마다 “그 분이 나의 하나님이고 내가 그 분의 백성인데 내가 못할 게 없다”는 새 힘을 얻곤 했습니다.
새 벽에 사무실을 나가 무릎을 꿇을 때, 그 분은 더 친절하셨습니다. 그 분은 내가 두려워 할까 봐 “얘야 나는 한다면 반드시 한다”고 역설하시는 환상을 보여주시곤 하셨습니다. 대학이 시작되기 앞서 내가 스스로 가장 잘 한 일이 있습니다. 그 것은 키르기즈스탄에 있는 동안 내가 한번도 하나님과의 신뢰의 끈을 놓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고 걱정을 해본 적도 두려움 속에 헤맨 적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미션을 완료하고 내가 키르기즈스탄을 떠날 때까지 아마도 내가 가장 잘 한 일을 꼽으라면 하나님에 대한 ‘절대신뢰’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소개받고 준비가 된 C를 선택하려하자 나를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식이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대학의 학장으로 D교장 선생님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실 D교장은 중등학교 교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방식으로 볼 때, 대학을 시작하는데 교장선생님을 모시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적절한 선택이라고 보기 힘든 일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움직였습니다. 세상의 방식대로 내가 C학장을 염두에 두자 하나님께서는 대신 D교장을 염두에 두고 그녀를 대학의 부학장으로 영전시켰습니다. C학장을 소개한 지 몇 개월이 지나지않아 교장선생님이었던 D교장이 대학의 부학장이 된 것입니다. 나는 전에 소개받은 C대학장을 만나 대학설립 A,B,C에 대해 물어볼 것이 많았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높이 30센티미터에 달하는 서류를 한 눈에 보기도 어려웠지만 막상 설립서류를 준비하려고 보니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설립서류를 당장 접수받을 부서장이 누구이고 부서이름이 무엇인지, 대학재정 계획을 몇년까지 수립해야 하는 지, 강사와 교수, 학생의 비율은 어느 정도해야 하는 지, 교육프로그램 서류가 러시아어로만도 가능한 지, 전임교원의 비율과 초기 임금 수준, 외국인 교원 초청하는 방법, 강의 언어 인정범위 등등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소개받은 C학장을 만나기 위해 다시 D교장을 직접 만나기 위해 이웃 고교를 찾았습니다.
수위실로 먼저가 “교장선생님 면회를 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묻자마자 그 수위아저씨는 “D교장이 그만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나는 당황했습니다.
“D교장을 만나야 C학장이 연결되는데….”라며 마음 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차분하게 물었습니다. “그 분이 그만 두셨나요? 아니면 다른 학교로 갔나요?” “다른 데로 갔습니다….”러시아인인 수위는 전형적인 퉁명스런 어투로 대답했습니다. 자신은 어디로 갔는 지 관심은 없다는 듯 “모른다”는 말로만 일관했습니다. 나는 교회 성가대에서 만난 딸을 통해 바뀐 전화번호를 얻어 차를 옆에 세워둔 채 다이얼을 돌렸습니다.
“여보세요. C교장 선생님?”
“오, 미스터 민. 저 비쉬켁 대학으로 옮겼습니다. 여기 부학장으로요….”
우리의 SOSI 영어학원 이웃의 중고교 교장 선생님, D교장이 국립대학 칼리지의 부학장이 되자 설립자 장로님과 나는 D부학장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부학장이 우리가 만들 대학의 학장?” 장로님과 나는 선택의 여지 없이 거의 동시적으로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부학장이라면 우리가 단과대학을 설립할 때 초대학장으로 모시는 일이 자연스레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제3자가 보더라도 부학장이 다시 학장이 된 것은 세상적인 눈으로 보더라도 모양새가 잘 갖춰진 인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C학장이 가르쳐준대로 대학설립 서류를 준비하는 지난 몇 개월동안 하나님은 초대 학장으로 D교장을 대학의 부학장으로 영전시켜며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D교장이 비쉬켁 대학의 부학장으로 영전해 일하는 동안 그녀는 그녀 스스로도 대학설립에 관해 공부하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미래의 KIUC 칼리지를 자신이 맡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교장선생님을대학의 부학장으로 영전시켜며 KIUC 설립에 개입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2012년 11월5일, 개교하다 (3) | 2024.0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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